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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 13. 18:01

쁘띠 카테고리 없음2019. 1. 13. 18:01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친한 개가 갑자기 죽었다. 개를 화장하고 묻어주기로 한 날 개 장례식에 초대 받았다.
1시간의 거리를 달려
보호자를 만났을 때 왈칵 눈물샘이 터져서 내내 닫히지 않았다.


하지만 곰곰히 그 눈물의 성분을 분석해보면 그 개를 위한 눈물은 아니었던거 같다.
그 개가 너무 보고 싶고 안타까운 나를 위한 눈물
개가 갑자기 죽었을 때의 억장이 무너지는 그 주인을 위한 눈물
개의 장례식에 왜 개를 위한 눈물은 없는가.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랬다.
난 엄마 잃은 아빠가 가여워 울었고
한 평생 고생한 할머니의 인생이 가여워 울었다.
여기에도 할머니를 위한 눈물은 아니었다

죽은 사람만 불쌍하지
죽은 사람이 뭐가 불쌍해? 산 사람이 불쌍하지?
어느게 맞느냐고? 산 사람만이 그 답을 생각할 수 있겠지...

#정리중

:
Posted by 꼬껴
2018. 12. 6. 23:51

안해도 돼 카테고리 없음2018. 12. 6. 23:51

#아빠의명언02
내가 성장하며 엄마가 내게 천마디 말을 하셨다면
아빠는 열마디 말도 채 안하셨다.
그래서일까?
문득 문득 아빠의 짧은 말씀이 기억이 난다. 길고 자세했던 엄마의 말씀에 비해 아빠의 그것은 늘 짧았다. 불친절하리만큼...지금와서 생각해보면 함축적이고 추상적이었다. 그래서 곱씹게 되고 충분히 커서야 아빠의 말씀을 이해하게 된다.

((신혼살림을 차리고 처음 아빠 엄마를 집으로 모셨을 때 엄마는 이것저것 알뜰히 챙겨주시고 전셋값이니 남편의 연봉이니 시댁의 경제상태 등을 묻고 걱정하고 코치하셨다. 물론 정확히 기억은 안난다. 하지만 아빠가 딸의 첫 집에 오셔서 한 행동은 기억이 난다. 아빠는 냉장고를 열어 보셨다. 내 평생 살면서 아빠가 집 냉장고를 여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런 아빠다. 아빠는 “먹을거는 있니?” 하시고 냉장고를 열어 보셨다. 냉장고 문을 닫고 아무 말씀 없으셨는데 표정은 ‘이거면 됐다’였다. ))

아빠는 내게 어떻게 살라고 가이드하지도 않으셨고
더 열심히 노력하라고 다그치지도 않으셨다. 그리고 먼저 나서서 도움을 주지도 않으셨다. 대체로 아빠 앞에서 난 씩씩했고 그러기에 더 말씀을 아끼셨다.
한 번은 유학시절이었는데 아마도 내가 좀 힘들다 투정을 부렸던거 같다. 아빠 앞에서 투정을 부릴 정도면 난 몇날며칠을 울고 우울해하고 친구들한테는 죽을만큼 힘들다고 징징거렸을 정도의 힘듦이었을 것이다. 그때 아빠는 “네가 힘들면 안해도 돼” 라고 하셨다. 그게 그렇게 위로가 되고 마음이 편안해졌었다. 학업이 더 이상 가슴을 짓누르던 압박이 아니라 나의 앞 길에 놓여진 여러 가지 중 내가 자유롭게 선택한 한가지라는 것이 선명해졌다.

내가 아빠에게 질문을 했을 때
아빠는 내게 답을 주기 보다는
다시 내게 질문을 주고
나 스스로 답을 찾게 하셨던 것이다.

#정리는나중에

:
Posted by 꼬껴
2018. 12. 6. 23:51

악의 특별성 카테고리 없음2018. 12. 6. 23:51

초등학교 때 주택 집에 혼자 있을 때 도둑이 든 적이 있다. 10살 무렵의 여자아이 혼자 있을 때 든 도둑이라 부모님은 크게 놀라셨고 경찰 기동대가 오는 등 크게 일이 벌어졌다. 아빠는 모범자율방범위원이었나 뭐랬나 그랬다. 경찰 그 중에서도 지위가 높아 보이는 경찰 아저씨는 거듭 아빠에게 사과를 구하고 범인을 찾기 위해 특별히 노력하겠다고 연신 허리를 굽혔다. 그래서인지 누가봐도 하등 쓸모가 없는 지문감식도 하고 그랬었다.
전말은 이랬다. 이른 저녁 시간, 부모님은 집에 안 계셨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빠도 없는 때 벨이 울렸다. 난 대답했고 누구누구 선생님 댁이냐 물었다. 벨을 눌렀는지 대문을 통과해 현관을 두드렸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당시 대문 정도는 큰 보안 장치가 아니었다. 대문이 닫혀있어도 아래층에 사는 사람들이 많아 뒷문은 열려 있기 쉬웠다.
그 중간은 확실히 기억 안나지만 확실한건 누구누구 선생님 댁인지를 묻고 어린 여자애가 아닌데요 라도 답하고 당황한 그는 어른 없어요? 묻고 나는 아무도 없는데요 했다. 그 중간 기억 안나고 아무튼 문을 하나 사이에 두고 그 사람과 나는 마주했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그는 어렸다. 많아 봐야 20대? 당시 대학생이던 사촌 오빠들보다도 어려 보였다고 느껴진다. 그는 다시 무슨무슨 선생님 댁이냐 물었고 똘똘한 나는 우리집 바로 앞집과 그 옆집이 선생님 댁이라고 알려 드렸다. 그는 당황하다가 혼란스러워 하다가 갈등 하다가 들어가서 전화 좀 써도 될까? 라고 물었고 나는 그러시라고 했다.
그는 내가 홀로 있는 큰 집에 들어 욌고 그의 뒤로 문은 닫혔다. 그는 나에게 방에 들어가 눈을 감고 100을 세라고 했다. 왜요? 왜요? 하다가 무서워졌고 방에 들어갔고 눈을 감았다 숫자를 셌다. 100을 한참 넘기고 인기척이 사라지고도 한참 후 나는 “나가도 돼요?” 몇 번 물은 후 절벽보다 깜깜한 문을 밀고 나왔다. 그 다음 기억은 아빠와 경찰관들과 문갑을 문지르던 지문감식 솔 등 이다. 피해액은 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저금통 몇 개와 당시 86, 88 올림픽 기념주화 정도였다. 범인 역시 잡히지 않았다.
가끔 그때 생각이 난다. 아찔하기도 하고 그 정도였기에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오늘도 불현듯...그런데 점점 그 사람은 아니 그 청년은 아니 그 소년은 잘못이 아니었던거 같다. 정말 그 청년은 누구누구 선생님 댁을 찾으러 왔었는데 내가 그 큰 집 문을 열고 나만 혼자 있고 아무도 없으니 들어오라고 했다. 길을 걷다 떨어진 돈을 발견했을 때의 그 정도 방황처럼 그리 큰 돈이 아니였을 때 슬쩍 주머니에 넣은 그 정도 갈등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찌보면 내가 그를 범죄의 길로 문을 활짝 열어 준게 아니었을까..
물론 당시 순수했던 길을 잃은 사람을 돕고자 했던 어린 나의 마음은 죄가 아니다. 죄라면 혼자 있을 때 모르는 사람에게 문을 열어주면 안된다는 정도의 간단한 프로토콜을 교육을 받지 못한 무식의 시대가 죄다. 그 무식이 어찌보면 순진한 소년을 범죄의 길로 인도했을 수도 있다. 한나아렌트는 어느 평범한 누구든 어떤 상황에 처해졌을 때 악을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로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 했는데 같은 의미지만 나는 반대로 악의 특별성을 이야기하고 싶다.
#정리는나중에

:
Posted by 꼬껴